용면리
용줄다리기
“경긔도 리쳔읍내에서는 근년에 처음보는 큰 줄다리기를 하엿는대 부근의 여섯 고을이 련합하야 편을 짜가지고 다리엇스며 당일회장에는 관람자가 삼만여 명에 달하얏고 줄다리는 사람이 륙천여 명에 달하야 실로 공전졀후空前絶後의 대장관을 이루엇스며…”
<1921년 3월 22일 동아일보 기사 발췌>
이천은 줄다리기의 고장이다. 불과 백 년 전, 삼만 명이 구경하고 육천 명이 참여한 엄청난 줄다리기가 이곳, 이천에서 벌어졌다. 일본인에 의해 강제로 사라졌지만, 이천시 곳곳에 아직도 옛 줄다리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천 단월동의 ‘단드레줄다리기’, 모가면 진가리의 ‘갈매울줄다리기’, 그리고 지금도 신둔면 용면리 마을에 전하는 ‘용면리용줄다리기’가 그것이다.
용면리용줄다리기는 볏짚을 모으며 시작한다. 마을두레패가 풍악을 울리며 마을을 한바퀴돈다. 마을 사람들은 미리 준비한 볏단을 정성껏 내놓는다. 마을 앞 느티나무 옆에 볏단이 쌓이면 비로소 ‘용줄’을 만든다. 보름날 아침, 경험이 많은 어르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을 장정이 가닥줄을 꼰다. 용면리 사람들은 이 과정을 ‘줄드린다’ 말한다.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아 높은 가지에 걸고, 세 개를 합친다. 세 배로 굵어진 새끼줄을 걸고 또 다시 합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어느덧 나무줄기보다 더 굵은 몸줄이 만들어진다.
몸줄은 너무 크고 무거워 그대로 당길 수 없다. 벗줄 또는 겻줄이라 부르는 작은 줄을 좌우로 늘여야 줄을 당길 수 있다. 머리는 크지만 꼬리 쪽으로 갈수록 가느다랗다. 끝은 꽁지줄이라 하여 멋스럽게 벌려놓는다. 가만보니 영락없는 용龍의 형상이다. 암줄은 아랫말 입구에, 숫줄은 웃말에 놓아둔다. 이제 바람과 비를 머금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대보름 둥근달이 휘영청 떠오른다. 남자들은 변강쇠가 올라탄 숫줄을 매고 웃말에서 내려온다. 여자와 아이들은 옹녀가 올라탄 암줄을 매고 맞서러 나선다. 드디어 암줄과 숫줄이 만났다.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기싸움을 한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바닥과 평행한 암줄머리에 숫줄머리를 쑤욱 밀어넣고, 빠지지 않게 거대한 비녀목을 지른다. 암줄과 숫줄이 만나 드디어 ‘용줄’을 완성한다.
돼지머리를 놓고 떡과 술이 푸짐한 고사상을 차린다. 마을촌장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정성껏 헌주한다. 제를 지내고 마을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술과 음식을 주고받는다. 흥취가 대보름달에 닿을즈음 마을사람들은 용줄로 모여든다. 남자는 숫줄, 여자와 아이들은 암줄이다. 긴장감이 흐른다. 암줄이 이겨야 마을에 풍년이 든다. 남자들이 눈빛을 교환한다.
영-차, 영-차. 아차차.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장정들이 숫줄에 죄다 들러붙었건만, 웬걸? 암줄이 손쉽게 승리한다. 여자와 아이들은 흥에 겨워 만세를 부른다. 수백 년 이어온 용줄다리기에서 숫줄이 이긴 적은 한 번도 없다. 내년에도, 아마 내후년에도 그럴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두레패의 풍물소리가, 그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서로 경쟁하듯 요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