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면
정승달구지
조선 후기, 안동 김씨 일족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시절. 왕의 외척, 김병기는 세도정치의 핵심인물로 온갖 위세와 권력을 마음대로 떨친다. 어느 날 그의 생부, 김영근이 죽자 김병기는 율면 고당리 야산에 묫자리를 잡고 명성에 걸맞는 화려한 장례식을 펼쳤다. 이때 김병기는 전국에 명을 내려 가장 이름난 선소리꾼을 모두 고당리로 불러들인다. 율면정승달구지 소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상을 펼쳐보자. 고인을 모신 목관이 광중壙中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슬픔을 누르며 억지로 끅끅 흐느끼던 울음이 마침내 통곡으로 변한다. 떠나는 이에 대한 예의와 남겨진 자의 위안이 교차하는 장례의 마지막 절차, 하관下棺은 지난 삼일간의 애도가 절정에 치닫는 순간이다. 회를 섞은 흙을 단단히 다져가며 광중을 메운다. 그래야 관에 물이 스미지 않는다. 하얀 고의적삼을 입은 남자들이 자신보다 훌쩍 큰 장대를 들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며 회를 다진다. 소리가 빠질 수 없다. ‘수번’이라 부르는 선소리꾼이 선창을 하면 흙을 다지는 일꾼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노래를 받는다. 보통 달구노래의 후렴구는 ‘에히리 달-구’식의 한가지 소리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율면 고당리의 회다지는 소리는 후렴구만 무려 일곱 가지 종류가 있다. 각 지역 선소리꾼의 소리가 녹아든 덕분으로 추정된다. 가히 상례에 사용하는 노래의 총 결산편이라 할 만하다.
‘정승달구지’라는 독특한 명칭은 고당리 마을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 안에는 이미 소리(노래)와 동작(춤)을 다 합친 의미가 담겨있다. 율면이라는 지역명을 넣은 것은 일반적인 관례에 따랐다. 예를 들어 양주별산대, 하회별신굿, 송파산대놀이, 횡성회다지소리 등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승달구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양주별산대는 별산대놀이 중 양주의 것, 송파산대놀이는 산대놀이 중에 송파의 것이라는 뜻이지만, 정승달구지는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정승달구지’로도 완전한 고유명사가 된다. 이래저래 살펴도 정승달구지는 참 특별한 이천의 전통문화이다.